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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의 빛나는 '헌신' 확인돼

2026-08-11

김순종 기자(how2read@s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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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제강점기, 가진 것을 지키기보다 내려놓는 길을 택한 사람이 있습니다. 진주의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 그가 독립과 인간 평등을 위해 얼마나 큰 재산을 내놓았는지가 최근 발견된 토지대장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김순종 기잡니다.

[리포트]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1910년대 토지조사부 문서입니다.

진주 일대의 땅에 강상호 선생의 본명인 '강경호'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습니다.

강상호 선생의 땅은 시 외곽지역 곳곳에서 발견됐는데, 그 수가 60필지에 달합니다.

그동안 구전으로만 떠돌던 '천석꾼 양반가'라는 점이 문서로 확인된 겁니다.

하지만 그 많은 땅은 오랫동안 선생의 손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시작으로 3·1 만세운동, 그리고 1923년 최하층 신분이던 백정들의 신분 해방을 외친 '형평운동'을 주도하며 재산은 모조리 소진됐습니다.

양반이라는 신분과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고, 독립과 계몽, 그리고 인권 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대가였습니다.

재산을 쏟아부은 삶의 끝은 처절할 정도의 빈곤이었습니다.

해방 후 지독한 곤궁에 시달렸고, 말년에는 옛 형평사원들의 도움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다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일부 친일 인사들이 해방 이후에도 상당 기간 부와 지위를 이어간 경우와는 사뭇 대조적인 삶입니다.

[인터뷰] 강호광,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그 단어에 가장 적합한 분이 강상호 선생님 아닌가. 높은 사회적 신분과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다했던 분으로 기억할 수 있겠습니다."

새롭게 발견된 이 토지대장은, 강상호 선생이 민족과 인간 평등이라는 가치를 위해 내려놓은 기득권의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선생이 걸어온 삶은, 우리 사회가 그 빛나는 헌신을 그동안 얼마나 정당하게 기억해왔는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SCS 김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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